• 2024년 새롬교회 표어
    교리는 삶이다!
  • 라칼럼
  • 홈 Home / 자료실 / 라칼럼
제목 [ 라칼럼 ] 2024년 05월 26일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 중 빼놓을 수 없는 고대 철학자는 소크라테스, 플라토와 아리스토텔레스 등이다.

특히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글을 쓰지 않았지만 그의 제가 플라토가 그에 관한 기록, <대화록>을 통해 그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이전의 철학자들이 소피스트와 현저하게 차이점을 둔다. 그것은 절대자에 관한 사유였다. 절대적 기준을 설정한 것이다.

볼 수도, 알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절대자의 존재를 믿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필요성에 관해선 설명한다.

절대 선, 절대 행복과 같은 논리가 이뤄지기 위해선 요청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무질서, 무법,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21세기가 접어들면서 페미니즘의 강세를 보였다.

미투라는 운동으로 인해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당하는 여성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온갖 신념을 현재도 펼치고 있다.

그 인권을 보호한다는 것은 좋으나 모든 것을 그것의 범주에 넣어서 논리를 억지로 펼치면 모두 그런 것으로 수용한다.

마치 여성은 일방적으로 남성에게서 열세나 열등이라는 전제를 감추고 피해자라는 절대적 개념을 세뇌시키고 있다.

여성을 향한 그 어떤 것도 침범, 비난, 조롱, 혐의 등을 해선 안 된다. 절대 불가침의 영역이다. 약하다는 것을 내세워 매스컴도 이것에 즐기고 있다.

어떤 자를 제거하려는 목적을 세웠다면 미투라는 이름으로 올가미 씌우면 모두의 종교재판 대상이 돼 화형에 처해지는 중세시대를 바라본다.

겨우 몇몇 사건을 뒷조사하여 전체가 그런 것처럼 미장, 과장, 확장한다.

여성은 고귀하고 절대적이라는 전제를 언제나 가지게끔 페미니스트는 우리를 농락하고 있다.



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올가미에 온 인류는 무관심, 무비판, 무책임에 처한다. 인간에서 무슨 절대성이 있나?

자신이 신인 것처럼 여기고 그 기준으로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가져가겠다는 신을 원숭이처럼 흉내 낸다. 신도 아니면서 절대성을 추구한다.

아니 무관심인 자도 있다. 있다고 가상, 허상, 상상한다. 현실성도 없는 것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우상을 만들어 놓아 모두 그것에 종속시킨다.

무서운 사상이다. 무서운 세력이다. 무서운 음모이다. 이런 음모는 인간이 지닌 부패성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믿고 싶은 대로, 알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하려는 극단적 이기심에 완전히 젖혀 있다. 누구도 반대하면 몹쓸 인간으로 취급하여 마녀 사냥한다.

좋다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인간을 전멸시킨다. 사회에 도전과 유행의 위협에 소심하여 그냥 흐름에 따라 살려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아니 대부분일 것이다.



신앙은 절대성을 지닌다. 인간이 고안한 절대성과 하나님을 절대적 존재로 믿는 신앙은 현저하게 다르다.

인간의 절대성은 어떤 대가, 세월, 점검도 없다. 그냥 감성적이다. 논리도 빈약하다. 하지만 신앙의 절대성은 다르다.

오랜 세월을 온갖 수난과 역경을 이겨내면서 존재하는 것이다. 수많은 자가 이 신앙을 위해 목숨도, 재산도, 추방도 개의치 않았다.

인간의 절대성은 대가를 치르는 것 같지만 보편성도 없고 생쥐처럼 타인을 비난하는 데만 초점을 맞춰 전복을 꾀한다.

신앙의 절대성은 처절하게 대가를 스스로 짊어지면서 자신에게 초점을 맞춰 개선해 간다.

인간의 절대성은 없는 것을 가상하여 만든 우상숭배이고 탐욕이다. 신앙의 절대성은 실제며 겸양이다.

우리는 세속의 무시무시한 쓰나미의 허상적 절대성, 즉 문화와 운동에 빠져 허우적거려선 안 된다.

맞서서 싸우는 것은 허공을 치고, 외로운 투쟁을 평생 지내야 하는 좁은 길로 가는 나그네와 같다.

하지만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광야로 가시고 떠나지 않을 것이기에 외롭지도 힘들지도 지치지도 않는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먹는 것도, 바라는 것도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에 ...



라 은 성(Rev., Ph.D.)


TOP